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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먹던 콩 요리 — 역사 속 전통 레시피

1. 조선의 식탁 위 콩 — 백성의 생명과 궁중의 영양을 책임지다

조선시대의 식탁에는 언제나 콩이 있었습니다.
콩은 농경 사회에서 백성의 생명을 지탱한 가장 실용적이면서도 신성한 곡물이었습니다.
흉년에도 잘 자라는 작물로, 곡식이 모자랄 때마다 콩은 밥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인 《경국대전》과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콩이 주요 국가 관리 작물로 지정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동의보감》에서는 “콩은 오장의 기운을 보하고, 독을 풀며, 살을 이롭게 한다”고 하여 영양식이자 약재로 활용되었습니다.

서민들은 콩밥을 지어 먹고, 콩국으로 속을 덥혔으며, 남은 콩은 된장과 청국장을 만들어 저장식으로 두었습니다.
반면 궁중에서는 두부와 콩조림, 탕평채 등 정갈한 상차림의 재료로 콩이 쓰였습니다. 사찰에서는 육류 대신 콩으로 단백질을 보충하며, 수행자들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음식으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콩은 조선 사회 전 계층에서 사랑받았으며, 백성의 생존, 궁중의 건강, 수행자의 정결함을 함께 상징했습니다.
즉, 조선시대의 콩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사람의 삶과 철학, 그리고 공동체의 정서를 담은 생활의 중심 곡물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먹던 콩 요리 — 역사 속 전통 레시피

2. 문헌 속 콩 요리 — 《규합총서》와 《음식디미방》이 남긴 기록

조선시대에는 음식 문화가 세밀히 기록된 고문헌이 다수 전해집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1815)와 장계향의 《음식디미방》(17세기 후반)입니다.
《음식디미방》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콩을 삶아 껍질을 벗기고 찧어 즙을 내어 두부를 만들며,
남은 찌꺼기는 비지라 하여 국과 찜에 쓰니 버릴 것이 없도다.”

 

이 문장은 당시 이미 콩을 남김없이 활용하는 지혜로운 조리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콩을 삶고, 찧고, 남은 찌꺼기까지 음식으로 활용한 것은 오늘날의 ‘제로 웨이스트’ 개념보다 한참 앞선 자연과 공존하는 생활 방식이었습니다. 《규합총서》에는 “된장은 집안의 근본이며, 두부는 마음의 정결함을 상징한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는 된장이 가족의 밥상을 지켜주는 기초였고, 두부가 손님을 맞이하는 정성과 예절의 표현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조선 후기 요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에도 콩 요리로 ‘두부선, 콩국, 장조림, 두부탕수, 비지국’이 등장합니다.
즉, 콩은 일상 반찬에서부터 궁중 연회상, 제례 음식까지 폭넓게 쓰였습니다.
📜 조선시대 대표 콩 요리 정리

음식명특징기록 출처
두부 정결과 품격의 상징, 제례 음식 《음식디미방》
된장 가정의 기본 양념, 발효 저장식 《규합총서》
비지국 영양이 풍부한 서민식 보양국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콩조림 궁중 반찬, 단맛·짠맛의 조화 《규합총서》
청국장 농가의 겨울철 단백질 보충식 구전 기록

이 문헌들을 보면, 콩은 조선인의 삶 전반에 녹아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자연을 소중히 하고, 음식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3. 조선의 전통 콩 요리 — 조리법과 철학이 함께했던 음식

조선의 콩 요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몸을 돌보고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조리법은 간단했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과학적 원리와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 ① 된장국 — 발효의 시간으로 익은 조선의 맛

된장은 콩을 삶아 메주를 띄우고, 소금물에 담가 긴 시간을 숙성시켜 만듭니다.
《규합총서》에서는 “된장은 서두르지 말고 장맛이 스스로 나게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된장국은 아침마다 끓여 먹는 서민의 일상식이었고, 그 깊은 맛은 ‘집안의 인심’으로 여겨졌습니다.
조리법:

  1. 된장 2큰술을 물 3컵에 풀고, 시래기·두부·애호박 등을 넣습니다.
  2. 다시마와 마늘을 더해 끓이고, 마지막에 들기름을 살짝 두릅니다.

된장국은 단백질이 분해되어 감칠맛이 깊고,
발효 중 생긴 유익균이 장의 건강을 돕습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된장국은 시간과 정성으로 완성된 건강식이었습니다.


🍱 ② 두부선 — 궁중의 정갈한 단백질 요리

‘두부선’은 궁중 연회상에 오르던 고급 음식으로,
두부 위에 고기와 채소를 올려 찐 단백질 요리입니다.
두부의 흰색은 청렴함과 절제를, 고명으로 올린 재료는 화합을 상징했습니다.
전통 조리법:

  1. 단단한 두부를 얇게 썰어 구운 뒤 수분을 제거합니다.
  2. 양념한 다진 쇠고기와 표고, 당근을 올려 찝니다.
  3. 잣가루와 참기름으로 향을 더합니다.

두부선은 단백질, 지방, 섬유질이 고루 들어 있어
궁중에서도 영양식으로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또한 그 정갈한 형태는 조선인의 미학과 손맛의 상징이었습니다.


🍵 ③ 청국장 — 겨울을 버티게 한 따뜻한 발효식

청국장은 추운 겨울, 농가의 귀한 단백질원이었습니다.
삶은 콩을 온돌방에 띄워 며칠간 발효시켜 만들었으며, 끈끈한 점액질과 구수한 향이 특징이었습니다.
전통 조리법:

  1. 삶은 콩을 따뜻한 방에 두어 2~3일 띄웁니다.
  2. 점성이 생기면 완성되며, 그대로 먹거나 찌개로 끓입니다.

《동의보감》에는 “콩을 띄운 장은 속을 덥히고, 담을 삭이며, 피로를 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국장은 자연의 발효와 사람의 손길이 만난 조선의 지혜로운 건강식이었습니다.

 

4. 조선의 콩 음식이 남긴 가치 — 전통의 지혜로 이어지는 식문화

조선시대의 콩 요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생활의 예술이었습니다.
콩은 버려지는 부분이 없었고, 모든 과정에서 재료를 아끼며 새로운 맛을 창조했습니다.
삶은 콩은 두부로, 찌꺼기는 비지로, 남은 장은 다시 국물로 쓰였습니다.
이러한 전통 조리 방식은 자연의 흐름을 존중하며 재료를 끝까지 활용한 생활의 지혜였습니다.
콩 중심의 식단은 검소하면서도 건강한 조선인의 삶의 철학을 반영합니다.
고기보다 담백하지만, 영양은 충분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는 발효 음식은
‘속은 단단하되 겉은 부드럽다’는 한국인의 성품과 닮았습니다.
또한 된장과 두부는 가족의 정, 어머니의 손맛, 마을 공동체의 온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장을 담그던 날의 항아리 소리, 두부를 빚던 물의 온도까지 모두 삶의 기억이자 문화의 향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된장찌개 한 그릇, 두부 한 모를 먹는 일은 조선의 시간과 마음을 이어받는 일입니다.
그 속에는 정성과 절제, 자연과의 조화가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콩은 한국인의 밥상 위에서 늘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시대마다 새로운 의미를 전했습니다.
그 꾸준함과 단단함이야말로 조선의 음식 문화가 오늘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