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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알레르기와 발효 식품 — 된장·청국장·미소는 왜 반응을 줄일까?

1. 발효 과정은 콩 단백질을 어떻게 바꾸는가 — 알레르겐 구조 분해의 과학

콩 발효 식품이 콩 알레르기 반응을 상대적으로 덜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발효 과정에서 콩 단백질의 구조가 부분적으로 분해되고 작은 펩타이드 형태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콩 알레르기의 핵심 단백질인 글리시닌·콩글루티닌·P34는 삼차 구조가 단단해 열·압력·조리 과정으로는 완전히 분해되지 않지만, 발효 과정에서는 미생물(주로 곰팡이·효모·세균)이 분비하는 다양한 효소가 이 단백질을 잘게 조각내며 알레르겐의 구조 자체가 약해집니다.
예를 들어 된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Aspergillus oryzae가 생성하는 프로테아제(protease)는 대두 단백질을 잘라 면역세포가 인식하는 항원 결정 부위를 없애거나 흐트러뜨립니다. 이 상태에서는 IgE 항체가 단백질 구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면역 반응이 줄어듭니다.
또한 발효 과정에서 단백질은 단순히 작게 쪼개지는 것뿐 아니라, 미생물 대사 과정에서 새로운 아미노산·펩타이드 조합으로 재구성되면서 원래 알레르기 유발 부위가 다른 형태로 변형되기도 합니다. 이 변화는 조리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발효만의 고유한 효소 작용입니다.
즉 발효는 단순 조리가 아니라 콩 단백질의 화학적·구조적 형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정이며, 이 때문에 콩 알레르기 환자 일부는 발효 콩 식품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섭취할 수 있습니다.

콩 알레르기와 발효 식품 — 된장·청국장·미소는 왜 반응을 줄일까?

2. 된장·청국장·미소는 왜 알레르기 반응이 덜할까? — 발효 미생물의 ‘단백질 절단’ 능력

발효 콩 식품은 모두 콩으로 만들어지지만, 발효 방식과 사용하는 미생물 종류에 따라 단백질 분해 효율이 크게 달라집니다. 된장은 주로 Aspergillus oryzae 기반의 곰팡이 발효, 청국장은 Bacillus subtilis 기반의 세균 발효, 미소는 곰팡이와 효모가 함께 작용하는 복합 발효로 이루어집니다.
된장은 곰팡이가 생성하는 단백질 분해 효소 덕분에 알레르기 유발 단백질이 상당량 분해되어 알레르기 반응 가능성이 감소합니다. 특히 글리시닌과 콩글루티닌 같은 저장 단백질은 된장 발효 과정에서 크기가 1/10 이하로 잘게 쪼개지는 경우가 많아 IgE 항체가 이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청국장은 Bacillus subtilis 특유의 강력한 단백질 가수분해 능력으로 인해 발효 속도가 빠르고 단백질 분해 수준이 매우 높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청국장 발효 중 생성되는 알칼리성 환경은 콩 단백질의 구조를 크게 변형시켜, 알레르겐 반응을 더 약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소는 일본식 발효로, 곰팡이·효모·젖산균이 함께 작용해 단백질을 부드럽게 분해하며 감칠맛을 더해줍니다. 발효 기간은 된장보다 짧지만 복합 미생물 덕분에 단백질의 구조에 미세하고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며,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부분이 흐려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발효 콩 식품은 모두 ‘콩’이지만 단백질 분해 수준·효소 종류·발효 미생물의 특성이 달라 알레르기 반응 강도도 달라지는 식품군입니다.

 

3. 발효가 장 건강을 개선해 알레르기를 완화하는 간접 효과 — 장내 미생물과 면역 안정

발효 콩 식품이 콩 알레르기 반응을 줄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발효 식품 자체가 장내 미생물을 건강하게 만드는 기능성 식품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3편에서 다룬 것처럼 장내 미생물은 알레르기 반응의 강도와 빈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된장·청국장·미소 같은 발효 콩 식품에는 유익균 또는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물질(프리바이오틱스)이 풍부해 장내 유익균을 증가시키고 장내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줍니다. 유익균이 늘어나면 장 점막이 강화되고, 단백질 조각이 체내로 흡수될 때 면역세포가 이를 위험 신호로 오해하지 않도록 조절됩니다.
특히 청국장은 Bacillus 균이 내는 대사물질이 장 점막 회복을 촉진하며, 된장은 발효 중 생성된 펩타이드가 면역 조절 기능을 도와 항염 효과를 나타냅니다. 이런 변화는 결국 콩 단백질에 대한 과민 반응을 낮추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합니다.
즉 발효 콩 식품은 단순히 알레르겐이 줄어든 식품일 뿐 아니라 장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 면역 반응을 안정시키는 ‘면역 조절형 식품’으로 작용합니다.

 

4. 섭취 시 유의점과 안전 전략 — 모든 발효 콩 식품이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발효 과정이 콩 단백질을 분해한다고 하더라도, 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발효 식품을 무조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레르기 반응은 개인의 면역 민감도·IgE 항체 수준·장 점막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발효 정도가 불완전한 제품은 여전히 알레르겐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첫째, 발효 콩 식품 섭취는 소량부터 천천히 테스트해야 합니다. 특히 청국장은 발효가 강한 만큼 단백질 구조 변화도 크지만, 반대로 미완성 발효 제품은 오히려 알레르기 위험성이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둘째, 상업적으로 제조된 발효 식품은 발효 정도가 일정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제품 라벨의 원재료·발효 기간·첨가물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일부 제품은 콩 단백질이 충분히 분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미료만 첨가되기도 합니다.
셋째, 발효 식품 중에서도 ‘간장’은 상대적으로 단백질이 많이 제거된 형태라 안전성이 더 높을 수 있지만, 제조 방식에 따라 다르므로 개인 테스트가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발효 콩 식품은 알레르기 가능성을 낮출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장 점막 상태 + 발효 정도 + 단백질 분해 수준”이 함께 작용하는 결과이므로, 체계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